
워렌 버핏의 생애
1930년 - 워렌 E. 버핏은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하워드와 레일라 버핏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.
1936년 ( 6세 ) - 인생 최소의 사업을 시작했다. 6개들이 코카콜라 한 팩을 25센트에 구입해 한 개에 5센트씩 받고 이웃에게 팔아 20%의 수익을 남겼다.
1938년 ( 8세 ) - 아버지 하워드 버핏이 보고 있던 주식시장에 관련된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.
1942년 ( 11세 ) - 아버지 하워드가 주식중개인으로 있던 해리스 업햄에서 주식정보 정리, 차트작성 등을 하면서 주식시장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했다. 처음으로 매입한 주식은 석유회사 시티 서비스로 3주를 주당 38달러에 샀다. 얼마 후 주식이 27달러로 떨어졌고, 다시 40달러로 오르자 팔아버렸다. 그러나 나중에 시티 서비스의 주가는 200달러까지 치솟았다.
1943년 ( 13세 ) - 친구와 가족들에게 30세에 백만장자가 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오마하의 가장 높은 빌딩에서 뛰어내릴 것이라고 장담했다.
1944년 ( 14세 ) - 워싱턴포스트 배달로 벌어들인 1,000달러 수입으로 세금을 내기 시작했다.
1945년 ( 15세 ) - 1,200달러를 투자하여 네브래스카 농지 약 40에이커를 사들였다. 친구 돈 댈리와 함께 윌슨 핀볼 게임기 회사를 설립니다. 그들은 중고 게임기를 구매-수리하여 대여하는 사업을 시작했다.
1947년 ( 17세 ) - 윌슨 핀볼 게임기회사를 퇴역 군인에게 1,200달러에 팔고 아버지 하워드의 권유로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 경영대에 등록했다.
1950년 ( 20세 ) - 네브래스카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지원했다가 거절당했다. 훗날 그의 스승이 된 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가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 등록했다.
1951년 ( 21세 ) - ①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이 가이코 보험회사 이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. 그는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기차를 타고가서 수위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가이코 본사의 정문을 두드려 부사장인 로리머 데이비슨을 만났다.
②버핏은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월스트리트에서 일하기를 원해 벤저민 그레이엄에게 급료를 받지 않고 일하겠다고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.
③투자 목적으로 주유소를 매입해 사업을 시작했지만 순자산 20%를 잃었다.
④주식 중개인으로 일하면서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'투자 원리'를 강의했다.
1952년 ( 22세 ) - 수전 톰슨과 결혼했다. 부부는 65달러짜리 임대 아프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.
1954년 ( 24세 ) - 벤저민 그레이엄이 버핏에게 자신의 투자조합인 그레이엄 뉴먼 투자회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. 그의 초기 연봉은 1만 2000달러였다. 여기에서는 가치투자자 월터 슐로스와 함께 일했다.
1956년 ( 26세 ) - 벤저민 그레이엄이 은퇴하면서 투자조합을 해제했다. 그 당시 버핏은 저축액이 14만 달러를 넘어섰다.
①오마하로 돌아와 '버핏 어소시에이츠'를 설립했다. 총 10만 5,000천 달러가 출자되었고, 조합원은 7명이었다.
1957년 ( 27세 ) - 3개의 투자조합을 운영했다. 3만 1,500달러를 주고 오마하에 침실이 5개가 있는 아담한 주택을 구입했다.
1958년 ( 28세 ) - 5개의 투자조합을 운영했다.
1959년 ( 29세 ) - 6개의 투자조합을 운영했다. 평생을 함께할 사업 파트너 찰스 멍거를 만났다. 찰스 멍거는 훗날 버크셔 부회장이 되었다.
1960년 ( 30세 ) - 7개의 투자조합을 운영했다. 버핏은 자신의 투자조합에 1만 달러를 투자할 의향이 있는 의사들을 찾아보라고 조합원인 한 의사에게 요청했고, 11명의 의사들이 투자에 동참했다.
1961년 ( 31세 ) - 투자조합이 10개로 늘어나 명칭을 '버핏 어소시에이츠'에서 '버핏 투자조합'으로 통합-변경했다.
1962년 ( 32세 ) - 버핏 투자조합들의 총 투자자금은 717만 8,500달러가 넘었다. 그중 버핏의 몫은 102만 5,000달러에 달했다.
자신의 모든 투자조합들을 하나의 투자조합으로 통합하고 버크셔 헤서웨이 주식을 주당 7달러에 사들이기 시작했다.
1964년 ( 34세 ) - 샐러드 오일 스캔들로 아메리칸 익스플레스의 주식이 35달러까지 떨어지자 이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.
1965년 ( 35세 ) - ①버핏 투자조합은 버크셔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들여 이사회에서 경영권을 장악하고 버크셔 신임 사장으로 켄 체이스를 임명했다.
②지난해 매입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주식이 2배로 뛰어올랐다.
1966년 ( 36세 ) - ①조합 설립 10주년이 되었고, 볼티모어에 본사를 둔 개인 소유의 백화점 '혹스차일드 콘'을 사들였다고 발표했다.
②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투자조합에 더 이상 조합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조합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.
1967년 ( 37세 ) -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당 10센트의 배당금을 지불했다.
1969년 ( 39세 ) - 투자조합을 해제하고 조합원들에게 투자자금을 돌려주었다. 투자자금을 돌려줄 때 조합에서 운영하고 있던 디버시파이드 리테일링과 버크셔의 주식을 제공하고, 현금으로도 찾을 수 있게 했다.
1970년 ( 40세 ) -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으로서 주주들에게 매년 편지를 써서 보내기 시작했다. 훗날 이 편지들은 세계 최고 투자자 버핏과 버크셔 해서웨이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.
1973년 ( 43세 ) - ①워싱턴포스트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. 매수 과정을 거치면서 이 회사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캐서린 그레이엄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이사회의 일원이 되었다.
②주가 하락으로 버크셔의 주식 포트폴리오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. 버핏의 개인 자산도 50%이상 감소했다.
1977년 ( 47세 ) - ①버팔로 뉴스의 주식을 3,4000달러에 매입했다.
②수전 버핏이 독립적인 삶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다. 그들은 이혼하지는 않고 가족 행사와 버크셔 정기 주주총회에도 함께 참석했다.
1978년 ( 48세 ) - 수전이 버핏에게 애스트리드 멩크스를 소개해주었고, 그들은 함께 살게 되었다.
1979년 ( 49세 ) - ①ABC의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. 이 주식이 주당 290달러에 거래되면서 버핏의 순자산은 1억 4,000만 달러에 달했다. 하지만 연봉은 5만 달러에 불과했다.
②버크셔의 주식이 연초에 주당 775달러에 거래되기 시작하더니 연말에 1,310달러까지 치솟았다. 버핏의 순자산은 6억 2,000만 달러에 달했다. 이때 처음으로 포브스 400대 부자 명단에 올랐다.
1985년 ( 55세 ) - ①버크셔 해서웨이가 적은 수익을 이유로 섬유사업에서 철수했다.
②ABC와 캐피털 시티즈의 합병을 성사시키고, 월드북으로 유명한 스콧 펫처를 매입했다.
1987년 ( 57세 ) - 월스트리트의 거대 증권회사 살로먼 브라더스에 7억 달러를 투자했다.
1988년 ( 58세 ) - 코카콜라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. 그 결과 10억 2,000만 달러에 이 회사의 지분 7% 정도를 사들이게 되었다. 버크셔의 투자 중 가장 수익성이 높은 투자였다. 버크셔는 지금도 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.
1989년 ( 59세 ) - 버크셔 주식이 주당 4,800달러에서 8,000달러 이상으로 올랐다. 버핏의 개인 재산은 38억 달러를 넘어섰다.
1992년 ( 62세 ) - 살로먼 브라더스의 회장으로 일하면서 대부분 뉴욕에 머물렀다.
불법 채권 거래 사건을 해결하고 회사를 회생시키는 데 온 힘을 쏟았다.
1993년 ( 63세 ) - <포브스>의 세계 최고 부자에 선정되었다. 2위는 빌 게이츠였다.
1999년 ( 69세 ) - 컨설팅 기업 카슨 그룹의 조사에서 버핏은 피터 린치와 존 템플턴을 앞서는 20세기에 가장 우수한 펀드 매니저로 선정되었다.
2001년 ( 71세 ) - 버크셔 해서웨이 보험 사업부는 9⠐11 테러 공격으로 약 22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.
2002년 ( 72세 ) - 110억 달러 규모의 통화선물계약을 체결했다. 이 계약으로 2006년 4월까지 2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.
2004년 ( 74세 ) - 아내 수전 버핏이 사망했다. 그녀는 26억 달러의 재산을 남겼는데, 대부분 버크셔 주식이었다.
2005년 ( 75세 ) - 버크셔 해서웨이 보험 사업부는 카트리나 등의 허리케인으로 약 25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.
2006년 ( 76세 ) - 2006년 7월부터 시작하여 5개의 자선재단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제산 520억 달러 중 370억 달러 정도를 기부하겠다고 6월에 발표했다.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기부금은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 20년에 걸쳐 분납되어 지급될 것이다.
2007년 ( 77세 ) -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의 투자사업을 운영할 후계자, 특히 젊은 후계자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.
2008년 ( 78세 ) - 총재산 620억 달러로 <포브스> 선정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.